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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홍님

자연인 안상홍의 존경 받을 만한 삶

 

하나님의교회-안상홍-자연인

 

 

자연인 안상홍에 대하여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설립자 안상홍.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 된 지 오래다. ‘하나님의교회’에선 그를 성령 시대의 구원자, 재림 그리스도, 보혜사, 아버지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단의 괴수, 사이비 교주 정도로 폄하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는 본문을 통해 안상홍이라는 한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였는지 아니면 단지 한 시대를 살다 간 거짓 그리스도였는지를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연인으로서 안상홍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며 종교적 가치 판단을 떠나, 어떠한 평가를 받아야 할 만한 인물인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안상홍-그리스도

 

 

안상홍, 그의 삶과 생애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약력을 통해 그의 생애를 확인해보면, 1918년 1월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출생하였으며 1948년 12월 안식교에서 침례를 받고 1964년 공식적으로 부산에서 ‘하나님의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1985년 소천하기까지 37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그렇다. 안상홍, 그는 제2천년기의 마지막 세기인 20세기 전반에 걸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20세기는 역사적으로도 전례 없을 격동의 시기였다. 그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20대 후반의 청년기까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디스토피아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가 태어난 해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초였으며 20대의 젊은 나이에는 2차 세계대전마저 경험했다. 청년으로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어야 할 그의 청춘은 전쟁의 포화 속에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분단 시기를 맞아 연이어 혼란한 시기를 겪던 국내의 정국 속에서 결국 6.25 전쟁마저 발발하며 다시금 그의 삶은 전쟁으로 황폐화되고, 그 수많은 고초 속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겪지 못했고 느끼지 못한 커다란 아픔과 상처로 채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맞이한 전란 후의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의 모습이요 가난과 궁핍으로 신음하던 폐허의 세계였다. 그리고 안상홍은 난민과 고아뿐이었던 파괴된 국가, 피난민들의 움막과 천막들로 가득하던 부산에서 복음의 여명을 열었다.

 

자연인 안상홍의 삶은 1948년을 기준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1948년 침례 이후 그는 성경에 기록된 새 언약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띠고 스스로 자처하여 전도자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복음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그는 1962년 3월 안식교에서 출교하여 23명의 성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하나님의교회’를 설립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에 교회 하나가 존재하지 못했고 그를 아는 이도 그가 전하는 성경의 말씀을 아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기성 교단을 제외하면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교회’임을 생각해볼 때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을까? 도대체 그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큰 사명감이 있었기에 그 누구도 권하지 않았고 청하지 않았을 힘겨운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아무 기반이 없는 가운데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이단의 괴수라고 비방을 받으며 온갖 조롱과 멸시를 감내해야만 하는 천대받는 구도자의 삶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는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했던 길만을 묵묵히 걸어갔다. 쉬운 길이 아니라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른 바른 길을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전국으로 전도를 다니려면 여비가 필요했기에 일과 전도를 병행했다. 그러나 전도에 더욱 전념하고 토요일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선 안정적인 일자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그 힘든 시절에도 모두가 마다했을 만큼 고된 석수일을 일부러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여 마련한 생활비의 대부분을 전도 여비로, 교인들의 용돈으로 쓰는 일이 허다했다.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는 삶은 조금도 누리지 못하고 늘 베푸는 삶, 남을 대접하는 삶으로 일생을 지냈다. 낮에는 석수 일을 하고 전도를 다니며 쉬지 못했고 밤에도 가택에 돌아와 쉼을 얻지 못한 채, 자그마한 호롱불 아래에서 얼마 되지 않는 품삯과 맞바꾼 기름과 종이로 ‘생명책’을 써 내려갔다.

 

오늘날 ‘하나님의교회’에서 볼 수 있는 진리 책자라는 이름의 책들의 원본은 그의 친필로 적힌 사랑의 편지나 다름이 없다. 정과 망치로 돌을 깨느라 상한 그의 손과 팔로 필체는 흔들리고 노구의 육신으로 기록한 책자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점과 흠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알고 자신의 삶을 비교하여 돌아본 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그를 나무라기 어려울 것이다.

 

 

 

 

안상홍-재림그리스도

 

 

 

 

안상홍, 삶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그렇게 기록한 책자는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퍼져나갔고 조금씩 그를 찾는 이들이 생겨났다. 산골짜기에 사는 가난한 농부, 험하고 외진 수풀 속에 자리한 양봉업자,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낚는 어촌의 어부. 언제 어디에서 누가 부르든 개의치 않고 무조건 찾아 나섰다. 그 길이 험한 산 길이든 얼어붙은 눈 길이든,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이든 살을 에이는 추위 속이든 덕석 같은 양복 한 벌로 일 년을 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갔다. 비록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리석은 세속의 욕심에 영적인 깨달음이 더딜지라도 포기치 않고 수십 년 간 말씀을 전했다.

 

누군가, 왜 그리 고생을 자처하며 힘을 들이냐 타박하더라도 그저 빙그레 웃으며 복음을 전하느라 받는 고난은 좋은 고난이고 훈장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한참 어린아이들이 성경을 가르쳐 달라하면 밤을 새워가며 원하는 말씀을 가르쳐주었고 배가 고프다 하면 자신의 그릇에 담긴 국수마저 모두 내어줄 만큼 성도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과 관심의 전부를 교인들에게 두고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모든 생애를 헌신한 사람. 자연인 안상홍의 삶은 반대자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극명히 다른 성인(聖人)의 삶이었다. 그의 삶의 태도와 모습 어디에서도 반국가적, 반사회적, 비도덕적, 비종교적인 어떠한 흠과 결도 찾아볼 수가 없다. 육신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면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못할 고난의 삶을 살았던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 나라면 이러한 삶을 구태여 선택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를 비판하기 이전에 누구나 한 번쯤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움을 가득히 담아 불러보고 싶은 그 이름. 아버지 안상홍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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