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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홍님

기독교인이 알아야 할 ‘엘리야’에 대한 19가지 사실 | 엘리야로 오신 안상홍님(2021년)

 

선지자 ‘엘리야’ 그는 누구인가?

 

엘리야는 누구인가?

그리고 엘리야의 사역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그의 생애와 예언적 성취에 대해 알아본다

 

[목차]

1.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 [바로가기]

2. '엘리야' 개요 [바로가기]

3. '엘리야'의 출신 [바로가기]

4. 엘리야의 모습 [바로가기]

5. 엘리야와 신약성경 [바로가기]

6. 엘리야의 시대적 배경 [바로가기]

7. 엘리야의 저주 [바로가기]

8. 엘리야와 그릿 시냇가 [바로가기]

9.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바로가기]

10. 엘리야와 갈멜산 대결 [바로가기]

11. 엘리야 3 6개월 만의 단비 [바로가기]

12. 엘리야와 로뎀나무 [바로가기]

13. 엘리야엘리사' [바로가기]

14. 엘리야와 나봇의 포도원 [바로가기]

15. 엘리야아하시야' [바로가기]

16. 엘리야의 승천 [바로가기]

17. 엘리야’를 대적하던 이세벨의 죽음 [바로가기]

18. 엘리야침례 요한그리고 안상홍님' [바로가기]

19.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과 '안상홍님' [바로가기]

 

 

1.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은 나의 하나님 여호와

 

2.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죽지 않고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 이스라엘의 선지자다.

 

3.    엘리야의 출신은 요단 동편에 있는 길르앗(Gilead) 지방의 디셉(Tishbe)’이었다

 

4.    엘리야의 외형적 특징은 털이 많고(혹은 털옷을 입은 사람)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는 것이다

 

5.    엘리야와 신약성경

 

엘리야에 대한 신약성경의 언급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변화산사건이며, 다른 하나는 엘리야의 저주에 따른 가뭄에 대한 야고보서의 언급이다.

 

예수님께선 자신의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다. 그리고는 영광스러운 본래의 모습으로 변형되시고 당신 곁에 나타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더불어 말씀하셨다. 이를 본 베드로는 무서워 떨며, 그곳에서 그들을 모시고 살겠다며 초막을 지어드리겠노라 하였으나 이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예수님께선 그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셨고 당신께서 부활하실 때까지는 제자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명을 주셨다(마태복음 17:1~9).

 

엘리야에 대한 야고보서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야고보서 5:16~18)

 

의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르며 그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예시로써,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와 이를 통한 하나님의 권능을 들었던 것이다. 무려 3 6개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목도하게 한다.

 

 

‘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엘리야’

 

 

6.    엘리야의 시대적 배경

 

엘리야는 약 2,800년 전 북왕국 이스라엘의7대 왕 아합과 동시에 등장한다. 6대 왕이었던대왕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왕국 왕이 된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왕으로 꼽힌다. 그와의 정략결혼으로 왕비가 된 이세벨역시 최고의 악녀로 기억되고 있다. 이스라엘을 바알아세라를 숭배하는 다신교 국가로 바꾸어놓은 장본인이다. 이 둘의 만남은 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크나큰 비극을 초래했다.

 

이세벨의 출신지인 페니키아(베니게)’는 다신교와 바알 숭배로 유명하다. 바알의 사제였던 이세벨아합을 부추겨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했다. 궁정에서는 직접 사제들을 육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의 근간을 흔드는 역모나 다름없었지만 아합은 모든 것을 용납했다. 이스라엘에는 바알의 제단에서 피어오르는 향 냄새가 진동했다. 이 냄새는 아주 더럽고 역한 것이었다. 숭배의식은 남녀 사제들과의 행음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한 행위가 자신들이 믿는 신들, 바알과 그 아내 아세라(아스다롯)에게 만족감을 주어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 때로는 사람이 제단 위에 올려졌고, 사제들은 자해를 하거나 날뛰며 춤을 추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멋모르고 왕과 왕비의 신앙을 따랐다. 하나님과, ‘라는 뜻의 바알을 분별하지 못한 채 하나님과 바알을 동일시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행위, 즉 우상숭배는 가장 악하고 가증스러운 일이다. ‘아합이세벨이 최고의 악인으로 기록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7.    엘리야의 저주

 

우상숭배의 극치를 보여준 아합이세벨의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에서 엘리야의 출현은 이들에 대한 저주로 시작된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열왕기상 17:1).”

 

엘리야의 저주대로 이스라엘에는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과 흉년이 계속되었다.

꼬박 3 6개월이었다(누가복음 4:25, 야고보서 5:17).

 

그런데 사실 그의 저주는 예언이었다. 3 6개월 동안 비가 없으리라”. 성경에서 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아모스 8:11). 다시 말해 3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리라는 얘기다. 3 6개월, 42개월이라는 기간은 다른 예언들과도 맞물려 있다.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요한계시록 13:5)

 

사도 요한은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가진 짐승이 42개월 동안 권력을 행사하리라는 계시를 보았다. 그리고 일찍이 다니엘도 이와 동일한 계시를 받았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8, 25)

 

한 작은 뿔이 세 뿔을 정복한 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법을 변개시키리라는 예언이다. 여기서, 때는 1년을 의미한다(다니엘 11:13). 3 6개월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얘기다. 3 6개월은 달수로 42개월이며, 날수로는 1260일이다. 성경에서는 1일을 1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민수기 14:34, 에스겔 4:5~6). 이 계산대로면 1260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1260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감히 어떤 자가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법을 변개시켰던가. 이는 로마 가톨릭’의 역사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 가톨릭’은 이단사상으로 정한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했던 세 나라를 차례차례 제거한 바 있다.  '헤룰리', ‘반달에 이어 가톨릭에 의해 뿌리째 뽑혀 역사 속에서 사라진 나라가 바로 ‘동고트’다. 서기 538년의 일이다.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은 이때부터 절대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의 황제가 눈밭에 3일 동안 무릎을 꿇고 사죄했던 일화는 교황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후 교황은 종교재판을 통해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형했다. , 태양신 경배일인 일요일 예배와 태양신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도입하고, 십계명을 마음대로 변경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둘째 계명을 없애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넷째 계명은 일요일을 지키라는 계명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교황의 권력이 쇠퇴한 건 이로부터 정확히 1260년 후인 1798년이다. 그 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 교황령이 점령되고 당시 교황(비오 6)과 교황청은 로마에서 쫓겨났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진리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정확히 엘리야의 예언대로였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세상에는 우상숭배가 판을 쳤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교인들로 하여금 태양신을 숭배하게 하는 가톨릭,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개신교에게서 아합이세벨이 그대로 읽히는 이유는, 그들이 예언과 예언 성취의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요한계시록 2:20~21)

 

8.    엘리야와 그릿 시냇가(Cherith brook)

 

엘리야의 저주 이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합왕으로부터 도망했다. ‘엘리야는 요단 앞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었다. 그는 까마귀들이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셨으나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물이 말라버려 더 이상 마시지 못했다.

 

한편, 아합은 자신의 땅 곳곳에 사람들을 보내어 저주와 동시에 숨어버린 엘리야를 찾고자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숨기셨기 때문에 애쓰고 노력한들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윽고 하나님께선, ‘엘리야를 바알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으로 인도하셨다.

 

그릿 시냇가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엘리야의 고향 근처에 있던 여러 강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서에 기록된 엘리야에 대한 힌트 중, ‘요단이라는 지명과 그 내용의 전후를 살펴보면 디셉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요단 근처의 한 조그마한 강줄기, 아마 와디(Wadi)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아들

 

 

9.    엘리야와 사르밧(신약: 사렙다) 과부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마른 뒤, 하나님께선 엘리야를 사르밧(두로와 시돈의 중간 지점)에 있던 한 과부에게 보내셨다. ‘엘리야가 그 과부를 처음 만났던 당시 그녀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다. 사르밧의 과부는 자신이 가진 소유의 전부가 밀가루 한 움큼과 조금의 기름밖에 없으므로, 그것들로 아들과 떡을 만들어 먹고 그 이후에는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과부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고 과부는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여 그를 위해 떡을 만들어 공궤 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자신을 위하여 떡을 만들어 준다면 가뭄이 마칠 때까지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는데, 이는 실제, 그대로 이루어졌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과부의 집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자,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린 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그를 다시 살려내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이 저주하며 약조한 3년 반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엘리야는 사르밧(사르밧의 음역이 사렙다)에 머물렀다.   

 

10.  엘리야와 갈멜산 대결

 

드디어 3년 반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셨다. ‘엘리야는 가장 먼저 궁내 대신이었던 오바댜(전에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일 때, 100명의 선지자를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제공했던 의인)’를 만났는데, 당시에 아합은 마흔두 달 동안 극심했던 가뭄으로 인해 근심하며 오바댜와 함께 각각 무리를 이끌고서 마실 수 있는 물을 찾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오바댜로부터 엘리야가 다시 나타났다는 보고를 들은 아합은 그를 찾아가서 이 모든 재앙으로 모두가 괴롭게 된 이유가 전부 엘리야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리어 엘리야는 이 모든 환난이 아합의 죄 때문임을 명확히 밝혔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아서 참 신을 가려내자고 하였다. 이 모든 재앙이 누구의 탓인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이스라엘의 참신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그의 제의를 수락한 아합은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불렀다. 마침내 엘리야 850인의 거짓 선지자들 간에 갈멜산 대결이 시작되었다. 거짓 선지자들과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을 때, 엘리야가 외쳤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열왕기상 18:21)

 

그러나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두 송아지를 잡아 각자 각을 떠 나무 위에 올려두고 각자 신의 이름을 불러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을 밝히자’ 라고 말이다. 이를 가만히 방관만 하고 있던 백성들도 좋은 의견이라며 찬성했다. 바알 숭배자들이 먼저 나서 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두며 부르짖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후 더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그들의 규례를 따라 칼과 창으로 자해하고 피까지 흘렸으나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엘리야가 그들과 바알을 조롱했으나 아무도 이에 대해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쯤, 이번에는 엘리야가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효대로 돌을 취해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했다. 단 주위로는 도랑을 파서 물을 부었고 심지어 번제물과 나무에까지 물을 부어 다 적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소제 드릴 예배 시간에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 모든 것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도 다 태워 없애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백성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엎드리며 외쳤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 모든 대결이 끝난 후, ‘엘리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거짓 선지자들을 잡게 하여 기손 시내로 내려가 그들을 모두 죽였다. 850:1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셈이다.

 

11.  엘리야 3 6개월 만의 단비

 

갈멜산 대결 이후, ‘엘리야는 갈멜산의 정상에 올라 꿇어 엎드린 채 기도했다. 3 6개월 간 비가 조금도 오지 않아 완전히 메말라있던 이스라엘 땅에 다시금 단비를 허락하시길 간절히 구하는 기도였다. 기도하는 도중, ‘엘리야의 사환이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잠시 뒤에는 구름과 바람이 일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마침내 큰 비가 내렸다. 무려 마흔두 달 만에 다시금 비가 내린 것이다.

 

12.  엘리야와 로뎀나무(댑싸리 나무)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 사건의 결말을 전해 들은 이세벨은,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을 보내어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엘리야는 그곳을 피해 유다 땅에 속한 브엘세바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브엘세바에 도착한 이후, 다시 남쪽으로 하룻길을 걸어 로뎀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계속된 도피 생활과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지친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하다가 잠에 든다. 그런데 자고 있던 도중,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와서 그를 깨웠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마신 그는 다시 기운을 차려 힘을 얻었다.

 

13.  엘리야엘리사

 

다시 힘이 솟은 엘리야 40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시내산)’에 도착하여 한 동굴 속에서 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명을 받았는데 이는 다메섹의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각각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 이스라엘의 왕 그리고 엘리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메시지였다. 또한 하나님께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자들 칠천 인을 남기실 것이라 약속하셨다.

 

호렙산에서 명을 받은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아벳므홀라에서 열 두 겨리의 소로 밭을 기경하던 엘리사를 만나 겉옷을 던져서 자신을 따라오게 하였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 제안을 수락하여 엘리야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수종을 들며 엘리야의 승천 때까지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렇게 엘리사엘리야를 만나 그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장차 그의 뒤를 이을 선지자로 부름 받게 되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과 ‘이세벨’ 

 

 

14.  엘리야와 나봇의 포도원

 

엘리야가 자신의 제자 엘리사를 만난 뒤에 아합은 적국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부친이었던 오므리가 아람에 빼앗겼던 성읍을 다시 되찾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을 직후, 아합은 자신의 궁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던 나봇의 포도원을 매입하여 자신의 나물 밭을 삼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포도원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이었고, 그 포도원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기에 팔 수가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봇의 포도원을 손에 넣는 데에 실패한 아합이 이로 인해 식음을 전폐하고 근심하자 그의 아내였던 이세벨이 다가와 의중을 물었다. 이윽고 전말을 알게 된 이세벨은 악한 계략을 생각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자 하였다.

 

그녀는 편지를 써서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뒤, 불량배 2명을 시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거 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완전한 중상모략인 셈이다. 그렇게 나봇은 이세벨의 시나리오대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그의 포도원은 이세벨의 계획대로 아합의 차지가 되었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합이 포도원을 취하고자 그곳에 향했을 때, 그곳에는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장차 처참하게 죽을 것임을 예언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합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연합군을 조직하여 아람의 길르앗 라못을 치러 올라갔는데, 그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합은 당일 저녁에 죽게 되었고 사마리아에 장사되었다.

 

15.  엘리야아하시야

 

아하시야는 아버지 아합의 죽음 후, 그를 뒤이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이다. 그는 2년 동안 왕위에 앉아 있으면서 온갖 우상숭배와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러던 중, 어느날 그가 다락의 난간에서 떨어져 큰 병을 얻었는데, 그는(하나님을 믿는 나라의 왕이었음에도!) 하나님이 아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를 묻고자 사자를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털이 많고 가죽띠를 띤 선지자가 그 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선지자는 아하시야가 하나님에게 묻지 아니하고 바알세붑에게 물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통지한 뒤 그를 떠났다. 이에 사자가 돌아가서 자신이 당한 일을 왕에게 그대로 고하니, 그로부터 경위를 전해 들은 아하시야는 외형에 대한 특징을 통해 그 선지자가 엘리야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하시야’왕은 다시금 엘리야를 찾고자 오십부장과 그 부하 오십 인을 두 차례 보냈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불살랐다. 이에 세 번째 보냄을 받은 오십부장은 엘리야앞에 엎드리고 간청하여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게 되었다. 다시금 아하시야앞에 선 엘리야는 왕의 죽음을 재차 확언하였고 이후 얼마 가지 않아 왕은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선지 ‘엘리야’의 승천

 

 

16.  엘리야의 승천

 

아하시야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람(또는 요람)’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길갈에 가게 되었는데 엘리사를 그곳에 머물게 하고 자신만 따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엘리사가 끝까지 반대하며 따름의 도리를 다 하고자 했기에 동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벧엘여리고그리고 요단에서도 반복되었다. ‘엘리야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엘리사의 정성과 진심으로 인해 두 사람은 요단을 함께 건너게 되었다. 승천 직전, ‘엘리사는 마지막으로 간구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자신에게 갑절이나 있기를 바랐다. 두 사람이 대화하던 중, 홀연히 하늘로부터 불 병거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이후 엘리사는 자신의 소원대로 갑절의 영감을 얻었으며 남겨진 엘리야의 겉옷을 취했다.

 

17.  엘리야’를 대적하던 이세벨의 죽음

 

시내산에서 엘리야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라는 말씀은 엘리사에 의해 대신 이루어졌다. ‘엘리사는 자신이 기르던 선지자의 생도를 파송하여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였는데, 이 말씀을 전해 들은 예후는 군대를 이끌고 여호람을 배반하게 되었다. ‘예후는 반역의 소식을 듣고 나온 여호람을 활로 쏴 죽이고 그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졌으며 이스르엘에 이르러 이세벨을 창 밖으로 던져 죽이게 하였다. 던져진 시체는 개들의 먹이가 되어 두개골과 손발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예후는 이후 아합의 아들 70명과 더불어 그에게 속한 이들을 전부 죽였으며 바알을 위해 거룩한 대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 전역의 바알 숭배자들을 전원 소집하고 나서 그들을 죽이고 바알의 당을 불살라버렸다(왕하 9:17~37).

 

18.  엘리야침례 요한그리고 ‘안상홍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라기 3장 1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라기 4장 5절)

 

예수님께선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침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1:13~14). 말라기 3장과 4장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임하시기 이전에 먼저 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해야 하는 사명자가 있는데, 성경은 그를 가리켜 엘리야라고 예언했고 침례 요한이 그 예언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침례 요한의 외형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 3장이나 마가복음 1장에 의하면, 침례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정확히 엘리야의 외형과 일치한다.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침례 요한이 곧 예언되어 있던 엘리야로 온 선지자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대로 등장하여 구원자의 길을 예비한 엘리야 1차적으로 침례 요한을 가리킨다.

 

그러나 엘리야에 대한 모든 예언을 침례 요한이 전부 완수했던 것은 아니다. 요한은 분명 엘리야의 사명으로 태어난 선지자였으나 그 모든 예언과 사명을 자신의 때에 이룬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장차 엘리야의 사명으로 다시 등장하실 또 다른 선지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로, 진정한 엘리야라면,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기 직전에 나타나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라기 4장 1, 5절)   

 

성경에서 말하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란 곧 최후 심판의 날을 말한다. , ‘엘리야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는 선지자라면 2천 년 전이 아니라 마지막 최후의 심판이 있기 직전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침례 요한이 ‘엘리야’ 임은 분명하지만, 남아있는 예언의 성취를 위해 2차로 엘리야가 등장해야 한다.

 

둘째로, ‘엘리야는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그리고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해야 한다. 여기서 아비와 자녀란, 당연히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서 그 마음이 멀어진 백성들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 바로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이다. 당시 엘리야는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하나님께 제사로 예배하였으며 그 응답을 받았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다시금 그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했던 역사가 있었지 않은가? 고로 장차 등장할 엘리야의 사명으로서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킨다는 말씀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당시 엘리야의 행적을 생각해볼 때, 그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제사와 예배뿐이다. 그리고 엘리야는 정해진 규례를 따라 저녁 소제드리는 시간에 예배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제사를 지내는 정해진 절차가 있었는데, 이를 성경에서는 절기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결국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복구했다는 말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규례인 절기를 회복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절기야말로 하나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말라기 4 4절의 내용 가운데,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하신 말씀 또한 마지막 때에 등장하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율례이자 법도인 절기를 회복함으로써 사명을 이룰 것임을 증거 하신 내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절기에는 옛 언약의 절기와 새 언약의 절기가 존재하는데 마지막 때 등장할 엘리야가 회복할 절기란 당연히 새 언약의 절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2천 년 전 등장했던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제사 방법인 새 언약의 절기를 회복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1차적으로 침례 요한엘리야였음은 분명하지만, 남아있는 예언의 성취를 위해 2차로 다시 엘리야가 등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예언에 따라 마지막 때에 등장하셔서 새 언약의 절기를 모두 회복해주신 분이 누구인가? 로마카톨릭을 위시한 사단 마귀에 의해 모든 진리가 폐지되고 도래한 종교 암흑 세기.년 반의 가뭄으로 표상되었던 종교 암흑 세기를 지난 이후에도 새 언약의 절기를 회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안상홍님께서는 그 어떤 신학자나 목회자도 이루지 못한 새 언약 절기의 완전한 복구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를 설립하신 안상홍님은 틀림없는 하나님이다.

 

 허두에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은 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였다. 엘리야의 실체로 등장하신 안상홍님께선 참으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다.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엘리야는 바로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육체를 입고 임하신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안상홍님께선 엘리야와 같이 동방에서 등장하셨으며 털옷과 가죽띠를 입으시고 당신께서 바로 엘리야로 오신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셨다. 

 

 

‘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을 이루신 안상홍님

 

 

19.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과 '안상홍님'

 

엘리야의 사명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과거 엘리야 1차적 성취로서 등장했던 침례 요한의 사명과 행적을 통해 참 엘리야이신 안상홍님의 마지막 사명을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 40장과 말라기 3장의 예언을 살펴보면, ‘엘리야의 사명 중에는 장차 등장하실 구원자를 증거하는 사명 곧 하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는 막중한 과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과거 요한은 자신에게 침례를 받고 구원 사역을 시작하시고자 나아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거하여 엘리야로서의 소임을 다했던 바가 있었다. 그리고 구원자를 증거한다는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 성취는 이것으로 끝마쳐지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때에 다시금 등장하실 엘리야가 계신다는 것은 곧 엘리야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 할 수 있는 구원자를 증거한다’는 사명 또한 다시 반복될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명에 따라, ‘엘리야로 오신 아버지 안상홍님께서도

당신의 뒤에 등장하실 또 한 사람의 구원자를 친히 증거해주셨다.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아직 어린아해더라.

이 사람은 내 뒤로 나올 사람이니

때가 되면 나올 것이라

1955년 ‘일곱 우뢰의 개봉’ 책자 서문 中

 

 

19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둘째 아담으로 예언되어 있지만

그 예수님이 세상 끝에 다시 육체로 나타나셔서

모든 짐승(이방 사람)들을 인도할 것을 예언으로 보이신 것이다

……끝 날에 성령과 신부가 나타나서 모든 짐승(이방 사람)을 인도할 것이다

1980년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책자 제24장 완성품과 미완성품 中

 

 

성령과 신부는 어떠한 모양으로 와서 외칠 것인가?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있는 말씀은

1900년 전에 초막절 끝날 외치신 그 예수님이

다시 육체를 쓰시고 외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1980년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책자 제35장 생명수의 샘 中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름

여호수아는 모세를 따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름

나는 어머니를 따름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킴

친필노트 중 ‘하나님과 동행’ 中

 

 

또한 안상홍님께선 1984 4 15일 당신의 마지막 유월절을 평소대로 부산에서 지키지 않으시고 어머니 계신 서울에서 지키셨다. 장소도 교회가 아닌 예식장(동부예식장)으로 정하셨으며 청색초와 홍색초에 화촉을 밝히시며 그곳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뤄지고 새 예루살렘 신부를 증거해주시는 자리임을 알려주셨다.

 

어머니께선 안상홍님께서 설교하신 단상에 오르시어 기도하셨으며 이후 아버지께선 5 18일 강동예식장에서의 예식 사진까지 남겨주시며 친히 하늘 어머니를 증거해주셨다. 사진 속의 두 분께선 모두 예복을 입고 계셨으며 분홍 카네이션을 통해 우리의 하늘 부모님이심을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이상의 증거를 통해 봤을 때, 안상홍님께선 엘리야의 사명으로 등장하셔서 구원자 하늘 어머니를 증거해주신 것임이 틀림없다.

 

선지자 엘리야의 일생에 대한 수많은 기록은 결국 ‘안상홍님’을 증거하는 성경의 예언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에 대해 안다고 하면서도 안상홍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 시대의 구원자이신 성령과 신부에 대해 모른다면 그것은 엘리야에 대해 무지한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엘리야에 대하여 기독교인으로서 알아야 할 내용이 많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성령시대의 구원자이신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통해 참된 구원자를 깨닫고 모두가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기만을 소망하는 바다.